URL: https://www.youtube.com/watch?v=xr5_iDSA5lk 날짜: 2026-10-18 채널: 책과삶 원제목: 자녀가 잘되는 집은 엄마의 '이것'이 확실히 다릅니다 ㅣEp. 책과사람 179 (홍승표 감독) 출연: 홍승표 감독, 김재원 작품: 영화 《욕쟁이 할머니》
📌 핵심 질문과 논점
==부모가 건넨 사랑과 기억은 예술과 일상의 작은 행동을 통해 자녀와 손주에게 이어지고, 먼저 떠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남은 가족에게 다가가는 힘이 될 수 있다.==
- 어머니 정희만은 가난과 고된 식당일 속에서도 막내아들을 걱정하고, 서예와 그림을 시작하도록 보살폈다.
- 병상에서 시작된 모자의 그림은 어머니의 생애를 되짚고, 마지막 전시와 영화 《욕쟁이 할머니》로 남았다.
- 홍승표는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지시를 줄이면서 자유롭게 자라도록 하는 태도로 이어 준다.
- 부모를 만나고 손을 잡고 고마움을 말하는 현재의 행동이 애도의 마음과 함께 중요하다.
어머니의 사랑은 기다리는 의자, 새벽에 건넨 음식,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종이와 손길, 식당에 남은 목소리로 축적됐다. 홍승표는 어머니가 병상에서 그린 그림을 매개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함께 복원했고, 어머니가 남긴 400여 점의 그림과 일상을 전시와 영화로 보존했다. 자신의 아들에게는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마음껏 그려 보게 하며, 부모에게서 받은 자유와 애정을 다음 세대로 전한다.
1. 가난한 시절에 쌓인 모자의 사랑
서예를 배우게 한 어머니의 뒷바라지와 막내를 향한 염려는 홍승표의 예술과 삶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았다.
1.1. 종이 대신 장판지에 쓰던 어린 서예가
- 어머니가 먼저 서예의 길을 열었다
- 홍승표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예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 형편이 어려워도 어머니는 화선지와 붓을 사 주는 일을 아끼지 않았다.
- 재료가 부족해도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 처음에는 화선지를 살 돈이 없어 신문지를 구해 쓰려 했지만, 신문지조차 넉넉하지 않았다.
- 화장실에 두던 종이를 잘라 쓰고 장판지에 글씨를 쓴 뒤 닦아 내기도 했다.
- 산에서 큰 글씨의 감각을 익혔다
- 이후 산에 들어가 지내며 큰 글씨를 쓰는 데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 서예와 서양화를 바탕으로 작업했고, 해외 화단에서도 작품을 인정받았다. 현판 글씨와 대형 작품도 제작했다.
1.2. 욕으로 복을 빌고 밤늦게까지 아들을 기다린 어머니
- 정희만 할머니의 욕은 손님을 향한 애정 표현이었다
-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에게 거침없이 욕을 했고, 단골들은 그 욕을 들으러 찾아오기도 했다.
- “욕 먹은 놈은 3년 재수가 있다. 내가 네 재수 시키려고 욕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욕을 복을 빌어 주는 말이라 여겼다.
- 손님은 일부러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려 욕을 청했다
- 욕을 듣지 못한 손님이 어머니에게 어떻게 하면 욕을 들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 홍승표가 반찬과 밥이 맛없다고 말해 보라고 귀띔하자, 손님이 그대로 말했고 잠에서 깬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며 욕을 퍼부었다.
- 성인이 된 아들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교복을 입었다
- 어머니는 젊은 시절 교복을 입은 막내의 모습을 예뻐했고, 그때로 돌아간 듯 행복해했다.
- 홍승표는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기억해 성인이 된 뒤에도 검은 교복을 입고 다녔다.
- 어머니의 기다림은 귀가한 아들을 안심시키는 의식이었다
- 어머니는 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창밖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 아들이 들어오면 “네가 들어왔으니까 이제 안심하고 잘게”라고 말했고, 낮보다 해가 진 뒤에 막내가 더 생각난다고 했다.
- 막내에게 정을 준 까닭은 홀로 남을 아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 홍승표는 자신이 개구쟁이고 말썽도 많이 부렸지만, 어머니가 막내를 유독 걱정했다고 회상했다.
- 어머니는 “내가 없으면 막내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마음으로 막내에게 애정을 더 쏟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1.3. 새벽의 뱀탕과 어머니의 위험한 헌신
- 영양이 부족한 아들에게 뱀탕을 먹였다
- 형편이 어려워 얼굴에 버짐이 생기던 때, 어머니는 잠든 아들을 새벽에 깨워 뱀탕을 마시게 했다.
- 홍승표는 처음에는 뱀탕인 줄 모르고 마셨고, 그 뒤에야 어머니가 손님에게 팔던 탕과 같은 음식임을 알았다.
- 아들을 먹이려다 어머니가 살모사에 물렸다
- 어머니는 뱀을 뜨거운 물에 넣어 탕을 만들려다 뱀이 튀어 오르자 붙잡았고, 그 과정에서 큰 살모사에게 물렸다.
- 홍승표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 안에는 피가 튄 흔적과 젖은 벽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는 병원에 실려 간 뒤였다.
- 그 기억은 화선지와 함께 평생의 감각으로 남았다
- 홍승표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두 기억은 뱀탕과 화선지다.
- 어머니가 병원에서 낡고 찢어진 흰 러닝셔츠 차림으로 아들을 품에 안은 모습도 생생하다.
2. 병상에서 되살아난 기억과 어머니의 그림
그림은 움직이기 어려운 어머니가 과거의 기억을 꺼내고, 모자가 함께 삶의 장면을 맞춰 가는 통로가 됐다.
2.1. 벽지에 그린 강과 건너편 세상
- 어머니가 병상에서 먼저 그림을 원했다
-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병으로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한 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오래 누워 지냈다.
- 2015년 말 무렵 어머니가 “나도 그림 좀 그리고 싶다”고 말하자 홍승표는 침상 옆에 있던 몽당 크레용을 건넸다.
- 벽지의 그림에는 떠남을 앞둔 듯한 풍경이 나타났다
- 어머니는 침상 옆 벽지에 무언가를 그렸고, 처음에는 낙서처럼 보였다.
- 가까이 살펴보니 강과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가려는 듯한 사람이 보여 홍승표는 그림에 담긴 뜻을 궁금해했다.
- 종이와 소재를 마련해 어머니의 그림을 이어 갔다
- 홍승표는 문방구에서 도화지를 여러 장 사 와 벽에 붙여 주었다.
- 어머니가 그릴 것이 없다고 하자 인터넷에서 찾은 말 그림을 출력해 줬지만, 어머니는 자기 기억이 아닌 그림이라며 종이를 찢어 버렸다.
2.2. 질문으로 불러낸 어린 시절의 장면
- 자신이 태어난 곳을 묻자 어머니의 기억이 움직였다
- 홍승표는 “내가 어디서 태어났어?”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가평 화악산에서 태어났다고 답했다.
- 아버지가 그곳에서 나무를 해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 파산과 이주가 그림의 다음 장면이 됐다
- 어머니가 그림을 멈췄을 때 홍승표는 “우리 거기서 쫄딱 망해 가지고 어디로 갔지?”라고 물었다.
- 어머니는 기차를 타고 보따리를 싸 들고 떠나 소요산 근처로 갔던 일을 떠올렸다. 홍승표도 그곳의 천막에서 지내던 기억과 아버지의 모습을 되살렸다.
- 그림 속 과거는 모자의 공동 기억으로 완성됐다
- 당시 다섯 살 안팎이었을 홍승표에게 어머니는 “우리 막내 아들 이뻐, 이뻐”라며 입을 맞췄다.
-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고 아들이 질문과 기억을 보태며, 두 사람은 말로만 남아 있던 가난한 시절을 그림으로 함께 복원했다.
2.3. 어머니의 팔을 받쳐 연 전시
- 누운 어머니의 손과 팔을 도와 그림을 이어 갔다
- 어머니는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 누운 채 그림을 그렸다.
- 홍승표는 어머니의 팔을 잡아 어머니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도왔고, 어머니가 말한 제목도 함께 써 주었다.
- 한글을 모르는 어머니와 제목을 함께 붙였다
- 어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지만 말로 장면과 제목을 전할 수 있었다.
- 홍승표는 어머니의 팔을 받쳐 글씨를 함께 썼고, 작품에 어머니의 목소리와 기억을 남겼다.
- 2017년 봄날에 어머니의 첫 전시를 열었다
- 2017년 4월 17일, 벚꽃이 한창인 날에 ‘욕쟁이 할머니 그림 이야기’ 전시를 마련했다.
- 홍승표는 동네 사람들과 벚꽃을 따 모았다가 어머니가 전시장에 들어설 때 꽃비처럼 뿌렸다.
- 400여 점의 그림과 작은 거짓말이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그림은 400여 점이 넘었고, 어머니는 일주일에 수십 장씩 그리기도 했다.
- 작품을 팔 수 없었던 홍승표는 봉투에 100만 원, 50만 원, 몇십만 원씩 넣어 두고 어머니에게 두 점을 팔아 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 그림을 인정받았다고 믿은 어머니는 기뻐했고, 홍승표는 작품을 지키면서 어머니의 소망도 채워 드렸다.
3. 돌봄과 사별 뒤에도 계속되는 대화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에 곁을 지킨 경험은 식당과 집, 묘소에서 이어지는 일상적 추모로 남았다.
3.1. 그림을 함께 그리며 마주한 어머니의 표정
- 행복한 순간마다 어머니의 슬픔도 보였다
-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홍승표가 곁에서 작업할 때 두 사람은 자주 눈을 마주쳤다.
- 한순간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마다 홍승표는 어머니가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잘 지낼지를 걱정한다고 느꼈다.
- 아들이 씻겨 드리며 어머니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보았다
- 영화에 담긴 병상의 어머니는 막내와 대화를 나누고, 아들의 손길을 받으며 점차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드러냈다.
- 마지막에 해맑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자, 이별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
-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다른 종류의 행복을 열었다
- 홍승표는 아내와 아들이 생긴 뒤에도 어머니와 보낸 시간의 행복과 아들과 보내는 행복은 서로 다른 감정이라고 말했다.
- 어머니가 떠난 뒤 한동안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새 생명이 태어나며 삶과 사랑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품었다.
3.2. 식당과 빈 침대에 남은 어머니의 흔적
- 식당 문을 열 때마다 어머니의 방송을 틀었다
- 홍승표는 아침마다 식당 문을 열면 어머니가 출연했던 방송 자료를 네 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을 먼저 재생한다.
- 어머니가 공간 안에서 살아 있는 듯하고, 손님들도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세요?”라고 물을 만큼 목소리와 모습이 식당을 채운다.
- 어머니가 만든 식당을 계속 지키고 있다
- 홍승표 혼자 시작한 식당이었다면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 어머니가 어렵게 일구고 사람들의 기억이 쌓인 공간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손님들이 찾아오기에 운영을 이어 간다.
- 출근과 귀가 때 빈 침대에 인사했다
-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홍승표는 아침에 빈 침대를 바라보며 “어머니, 잘 다녀올게요”라고 인사했다.
-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어머니, 잘 다녀왔어요”라고 말했고, 옷과 이불도 그대로 두었다.
- 3년 반 동안 매일 묘소에 올라 하루를 보고했다
- 식당에서 있었던 일과 카드 매출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며 하루를 보고했다.
- 세월이 지나면 그리움이 옅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이 사무쳤다.
3.3. 애도를 그림과 영화로 옮긴 시간
- 산에서 다친 뒤 그림으로 어머니를 만나기 시작했다
- 묘소에 다니던 홍승표는 큰 사고로 산에서 굴러 골절을 입었고, 더는 올라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신호처럼 받아들였다.
- 이후 꿈속에서라도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도화지에 그리며 어머니를 향한 대화를 이어 갔다.
- 몸의 고통을 안고 약 2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 도화지에 그린 장면을 큰 캔버스 천으로 옮기는 일은 허리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엎드리거나 웅크린 자세도 힘들어, 술로 통증을 누그러뜨리고 그림에 집중했다.
- 초상화에서 어머니의 일상 전체를 담는 영화로 확장했다
- 홍승표는 생전 어머니의 모습을 모자상으로 많이 그렸지만, 한 사람의 궤적과 일상을 캔버스에 모두 담기 어렵다고 느꼈다.
- 어머니의 일상을 영화로 남기려는 마음으로 2016년 말부터 촬영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다음 기록을 다시 엮어 《욕쟁이 할머니》를 만들었다.
- 첫 장편 영화는 효심을 과시하려는 작업이 아니었다
- 홍승표는 자신을 효자라고 내세우거나 “나는 이렇게 했다”고 자랑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예술가로 활동해 온 그에게 영화 연출은 첫 작품이었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기록하고 관객에게 전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4. 그림이 이어 준 과거와 다음 세대
어머니에게 그림은 기억을 꺼내고 다시 희망을 찾는 일이었으며, 홍승표에게는 어머니의 삶을 보존하고 아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존중하는 기준이 됐다.
4.1. 말 그림에 담긴 어머니의 몸과 소망
- 어머니는 말의 몸에 식당 손님을 그려 넣었다
- 어머니는 살아생전 말을 자주 그렸고, 임신한 말의 배 속에 여러 사람을 그려 넣기도 했다.
- 홍승표가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그 사람들이 식당 손님이라고 답했다.
- 굽은 다리는 현재의 몸과 억눌린 마음을 드러냈다
- 어머니가 그린 말의 다리는 꺾여 있었고, 홍승표는 그것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 손님들에게 욕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그림의 형상에 스며 있었다.
- 말은 과거의 고향으로 떠나는 탈것이 됐다
-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 갈 수 없는 소요산 쪽의 옛 기억을 말 그림을 통해 다시 찾아가려 했다.
- 홍승표는 어머니가 그리던 말을 자신도 집중해 그리며, 어머니가 과거의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에 동행했다.
4.2. 배운 적 없는 그림에서 찾은 희망
- 그림은 어머니에게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희망이었다
- 그림을 그리며 어머니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 홍승표는 어머니의 그림에서 수수께끼 같은 구성과 현대적인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 정답을 배우지 않은 손에서 독자적인 표현이 나왔다
- 어머니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 한글도 읽고 쓰지 못했지만, 과거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펼쳐 놓듯 그렸다.
- 홍승표는 처음에는 그림을 망친 것처럼 보았지만, 완성된 공간과 구성, 화면의 요소를 살펴보며 어머니의 표현이 지닌 힘을 새롭게 깨달았다.
- 어머니의 그림은 아들에게 보내는 추상적인 메시지처럼 남았다
- 홍승표는 그림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자신에게 “앞으로 이렇게 그려라”라고 남긴 수수께끼 같은 신호를 읽곤 한다.
- 그림은 과거의 기억을 쏟아 내는 표현이자 어머니가 다시 행복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4.3. 지시보다 자율성을 택한 아버지
- 아들에게 그림의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 아내가 교육과 양육을 많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홍승표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그림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는다.
- 아들을 독립된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크고, 영원히 자유롭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 창문에 그린 난초가 아들의 자발적인 그림으로 이어졌다
- 차창에 서리가 낀 날 홍승표는 유리 위에 난초를 그렸고, 어린 아들은 곁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 시간이 흐른 뒤 아들은 작업실에 와서 스스로 그림을 그렸고, 물감을 펴 놓은 화면을 난초라고 불렀다.
- 자유로운 표현은 창작자들의 눈에도 변화를 만들었다
- 홍승표는 아이가 무엇을 그리든 먼저 고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 작업실에 놀러 온 화가들은 아이의 그림이 달라졌다며 놀랐고,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랑과 허용의 태도가 손주 세대의 표현을 뒷받침했다.
5. 남은 사람에게 건네는 애도의 메시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그리움을 억지로 지우기보다, 그 마음을 표현하고 곁에 남은 가족에게 지금 다가가는 일이 필요하다.
5.1. 부모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랑은 지금 전한다
- 효도하고 싶어도 삶의 조건이 만남을 가로막는다
-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지 않은 자식은 없지만, 각자의 삶과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홍승표는 영화가 그런 자식에게 죄책감을 더하는 대신 먼저 손을 내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마움을 말한다
- 부모에게 가서 손을 따뜻하게 잡고, 가까이 눈을 맞추고, 마음의 문을 열어 “엄마, 고마웠어”라고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
- 그 마음이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홍승표와 10년 가까이 함께 고생한 제작진에게는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일이다.
- 사별한 사람은 그리움을 표현할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 그림, 영화, 식당을 지키는 일, 묘소에서의 대화는 홍승표가 어머니와 연결을 이어 간 방식이다.
-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이들에게 그리움을 어떻게 간직하고 밖으로 꺼낼지 생각할 계기를 건넨다.
5.2. 상실은 가족 사이에서 사랑의 형태를 바꾼다
- 홍승표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오래 머물렀다
-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빈 침대와 식당의 영상, 남겨진 옷과 이불이 일상에 함께했다.
-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이전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어머니와 아들에게서 느끼는 행복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공존했다.
- 김재원도 어머니를 잃은 기억을 나눴다
- 김재원은 어머니가 13살 때 세상을 떠났고, 거의 50년 가까이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을 때 마음속에서 어머니가 멀어지는 듯한 아쉬움을 느꼈지만, 홍승표의 방식에서 다른 애도의 길을 찾았다.
- 대화와 영화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 어머니를 추모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나누는 순간 자체가 홍승표에게는 애도의 시간이 됐다.
- 홍승표는 먼저 보낸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현재 곁에 남은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 부모가 남긴 흔적은 자녀의 마음에 새겨진다
- 마지막에 김재원은 부모가 자녀의 가슴에 새겨 놓은 흔적이 가장 위대한 예술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화선지와 그림, 기다림과 식당의 목소리는 어머니가 아들과 손주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이다.
주요 발언 모음
“욕 먹은 놈은 3년 재수가 있다. 내가 네 재수 시키려고 욕하는 거야.”
“내가 없어도 늘 행복하고 잘 살아야 될 텐데.”
“아들도 하나의 객체로서 큰 사고 없이 잘 크고, 영원히 자유롭게 성장해 달라.”
“효자라고 자랑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야. 엄마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 주고, 눈을 마주치고, ‘엄마 고마웠어’라고 말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어.”
“어머니에게 그림은 또 다른 희망이 아니었을까.”
핵심 데이터 & 수치
- 영상 길이: 1,587초, 약 26분 27초다.
- 원본 업로드일: 2026년 10월 16일이다.
- 어머니의 그림 요청: 2015년 말 무렵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 그림 전시 날짜: 2017년 4월 17일이며, 벚꽃이 한창인 봄날이었다.
- 어머니의 사망 시점: 2017년 12월이다.
- 남은 그림 수: 400여 점을 넘었고, 일주일에 수십 장을 그린 때도 있었다.
- 작품 판매를 꾸민 봉투: 100만 원, 50만 원, 몇십만 원을 담아 어머니의 그림이 팔렸다고 전했다.
- 묘소 방문: 홍승표는 3년 반 동안 매일 산에 올라 어머니에게 하루를 이야기했다.
- 애도 그림 작업: 큰 캔버스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약 2년 동안 그렸다.
- 촬영과 제작: 어머니의 일상을 2016년 말부터 촬영했고, 사후에 기록을 다시 엮어 영화를 만들었다.
- 김재원의 경험: 김재원은 어머니를 13살 때 잃었고 거의 50년 가까이 그리워했다고 밝혔다.
결론 및 시사점
- 사랑은 일상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기억된다: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일, 먹을 것을 챙기는 일, 재료를 사 주는 일이 자녀의 삶에 오래 남는다.
- 기억은 함께 표현할 때 새로운 힘을 얻는다: 어머니의 그림은 과거를 복원하고 모자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공동 작업이 됐다.
- 예술은 상실을 지우기보다 그리움과 함께 살게 한다: 그림과 영화는 떠난 어머니와 나누던 대화를 이어 가는 통로가 됐다.
- 양육은 자녀의 표현을 통제하지 않는 데서도 시작된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자발적인 그림을 존중하면 자기만의 표현이 자란다.
- 고마움은 미루지 말고 지금 전한다: 부모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말하는 현재의 행동이 후회를 줄이고 사랑을 확인한다.
핵심 요약 (20줄)
홍승표는 어머니의 권유로 서예를 시작했고, 종이가 부족한 시절에도 장판지에 글씨를 쓰며 예술의 길을 열었다.
정희만 할머니는 식당 손님에게 욕을 하면서도 그 욕이 3년 재수를 가져온다며 애정과 복을 건넸다.
어머니는 성인이 된 막내가 교복을 입은 모습을 좋아했고, 홍승표는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위해 교복을 입었다.
늦은 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귀가한 뒤에야 안심하고 잠들었다.
형편이 어려워 영양이 부족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준비하던 뱀탕을 새벽에 깨워 먹였다.
아들을 먹이려고 뱀을 잡던 어머니는 살모사에게 물렸고, 홍승표는 그날 집 안의 피와 병원에 실려 간 어머니를 기억한다.
2015년 말 무렵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고, 홍승표는 벽에 종이를 붙여 드렸다.
어머니가 벽지에 그린 강과 사람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듯했고, 모자는 그림을 매개로 기억을 나눴다.
홍승표가 태어난 화악산과 가족이 파산해 기차로 떠난 일, 소요산 천막에서 살던 기억이 어머니의 그림에 되살아났다.
홍승표는 누운 어머니의 팔을 받쳐 그림을 돕고, 어머니가 말한 작품 제목도 함께 써 드렸다.
2017년 4월 17일 전시장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은 벚꽃을 뿌리며 어머니의 그림을 축하했다.
어머니가 남긴 그림은 400여 점이 넘었고, 홍승표는 작품을 팔았다고 꾸며 어머니가 인정받는 기쁨을 지켜 드렸다.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며 아들과 눈을 맞추다가 슬퍼진 순간마다 홍승표는 자신이 떠난 뒤의 어머니 걱정을 느꼈다.
2017년 12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홍승표는 식당에서 어머니의 방송을 틀고 빈 침대에 인사했다.
홍승표는 3년 반 동안 매일 묘소에 올라 식당의 일과 카드 매출을 어머니에게 보고했다.
산에서 골절 사고를 당한 뒤 홍승표는 그림으로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약 2년 동안 그렸다.
어머니가 그린 임신한 말의 배 속 사람들은 식당 손님이었고, 굽은 다리는 아픈 몸과 억눌린 마음을 나타냈다.
그림은 어머니에게 과거를 불러오고 희망을 되찾는 일이었으며, 홍승표에게는 어머니의 삶을 남기는 통로가 됐다.
홍승표는 아들에게 그림의 정답을 가르치지 않고, 아이가 자유롭게 자라며 스스로 표현하도록 기다린다.
부모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말하는 현재의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도를 이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