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L: https://www.youtube.com/watch?v=gZ8iFTnZnJc
날짜: 2026-09-12
채널: 김바비의 바비위키
원문 제목: Who is GE, the company that always appears in stories about failed businesses? | BobbyWiki Binge-...
메타데이터
- 콘텐츠 유형: YouTube 심층 다이제스트
- 원문 발행일: 2026-09-12
- 분석 범위: 3M의 성장과 GE식 경영 도입, 보잉·에어버스 56년 경쟁, 잭 웰치식 경영의 탄생과 붕괴
- 핵심 기업: 3M, Boeing, Airbus, General Electric, Home Depot, Siemens, McDonnell Douglas
- 분류: 투자·재무·비즈니스 전략
📌 핵심 질문 / 이 콘텐츠가 다루는 핵심 논점
==실패를 허용하는 비효율은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다른 기업에서 성공한 숫자 중심 경영을 맥락 검토 없이 이식하면 신뢰·기술·조직 문화를 동시에 잃을 수 있다.==
- 3M은 광산 사업의 실패와 제품 개발 과정의 우연한 실패를 소재과학·접착 기술의 확장으로 전환했다.
- 에어버스는 후발주자였지만 쌍발 광동체, 디지털 설계, 공통 조종실, 공격적 리스·가격 전략에 배팅해 보잉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 GE의 잭 웰치식 경영은 사업 정리, 비용 절감, Six Sigma, 금융화를 통해 단기 실적을 끌어올렸지만 불확실성과 장기 혁신을 제거했다.
- 3M·Home Depot·Siemens·Boeing은 각자의 핵심 역량과 맞지 않는 GE식 방식을 도입한 뒤 혁신, 고객 신뢰, 기술 품질 또는 윤리성을 훼손했다.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는 발견과 실험에 필요한 여유가 있고, 항공기 제조사에는 엔지니어링과 안전을 지키는 판단이 있으며, 금융기업에는 숫자와 규율이 필요하다. 숫자 관리가 모든 기업의 만능 해법이라는 믿음은 각 기업의 생존 조건을 지워버리며, 일정 수준의 비효율과 실패를 감수하는 설계가 장기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1. 3M: 실패를 혁신으로 바꾼 소재과학 기업
3M은 문구 브랜드가 아니라 입자를 기재에 코팅하고 접착하는 기술을 여러 산업으로 확장한 B2B 소재과학 기업이며, 실패를 허용한 문화가 성장의 핵심이었다.
1.1. 친숙한 소비재 뒤에 숨은 산업적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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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브랜드와 실제 규모
- 익숙한 제품: Scotch Tape와 Post-it은 상표명을 넘어 테이프와 메모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 거대한 제품군: 3M이 만드는 제품 종류는 5만 가지가 넘으며, 비행기 조립용 특수 접착제·반도체 소재·자동차 부품·의료 제품까지 산업 현장 곳곳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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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회사라는 오해
- 핵심 정체: 3M은 사무용품 회사가 아니라 입자·필름·접착·코팅 기술을 보유한 소재과학 기업이다.
- 확장 방식: 같은 기초 기술을 헬스케어, 안전, 운송·전자, 소비재 등 서로 다른 산업의 문제에 적용해 제품군을 넓혔다.
1.2. 광산 사업의 실패가 사포 기술의 출발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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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창업과 잘못된 광물
- 창업 목적: 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mpany라는 이름처럼 미네소타에서 연마재 원료인 코런덤(corundum)을 채굴·가공하려고 설립됐다.
- 첫 실패: 채굴한 광물은 코런덤이 아니라 품질과 상품성이 낮은 사장석(anorthosite)이었고, 팔리지 않는 재고 때문에 자금이 바닥나 파산 위기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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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로의 전환
- 새로운 접근: 1904년 창업자들은 광물 채굴을 고집하는 대신 사포 생산에 집중하기로 하고 투자자를 영입해 공장을 세웠다.
- 공급망 구축: 필요한 연마 원자재를 스페인에서 수입해 사포 제작과 판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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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문제와 학습
- 고객 불만: 연마 입자가 종이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발생해 대량 반품이 이어졌다.
- 원인 규명: 운송 중 터진 올리브 오일이 스페인산 연마 원석을 오염시켜 입자가 종이에 제대로 밀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관리 체계의 탄생: 실패를 계기로 품질 관리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1914년 3Mite 연마포를 출시해 처음으로 수익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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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정체성의 전환
- 광산에서 소재로: 3M은 광산 회사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입자를 기재에 코팅하고 접착하는 공정 기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 핵심 교훈: 첫 사업의 실패를 인정하고 고객 문제를 조사했기 때문에 이후 모든 제품 확장의 기반이 되는 공정 지식이 축적됐다.
1.3. 리처드 드루와 Scotch Tape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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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도색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
- 현장 관찰: 기술직 직원 Richard Drew는 방수 사포를 시험하려고 자동차 차체 도색 공장을 방문했다가 당시 유행하던 투톤 도색 작업을 보게 됐다.
- 기존 마스킹의 결함: 접착제를 차체에 바르고 석고(plaster) 테이프를 붙이는 방식은 테이프를 뗄 때 페인트까지 벗겨지거나 접착제가 차 표면에 남는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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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경영진의 판단을 넘어선 실험
- 문제 해결 약속: Drew는 현장 직원들에게 해결책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 지시 불복종에 가까운 집요함: 경영진은 방수 사포 품질 개선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Drew는 별도로 쉽게 붙고 깨끗하게 떨어지는 마스킹 테이프 개발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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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화와 조직적 충격
- 출시: 1925년 Scotch masking tape가 정식 출시됐고, 1930년에는 Scotch transparent tape로 개량됐다.
- 사업적 결과: 사무실 필수품이 된 투명 테이프는 3M에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수익을 안겼다.
- 권한에 대한 교훈: 경영진의 명령보다 현장 직원의 관찰과 집요한 실험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1.4. 15% 룰과 Post-it의 긴 숙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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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제도화한 15% 룰
- 자율 프로젝트: 직원은 담당 업무와 관계없이 근무 시간의 최대 15%를 자신이 고른 독립 프로젝트에 쓸 수 있었다.
- 문화적 의미: 3M은 즉시 수익이 나지 않거나 실패할 수 있는 실험을 조직 차원에서 허용했고, 기술 직원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시험하도록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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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ncer Silver의 약한 접착제
- 개발 목표: 1968년 Silver는 기존 접착제보다 강한 초강력 접착제를 만들려고 했다.
- 예상 밖 결과: 결과물은 미세한 구형 입자를 이루는 접착제로, 반복 사용은 가능하지만 접착력이 낮았다.
- 실패 판정: 원래 목표에 비해 접착력이 턱없이 약했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사실상 실패로 간주됐고, Silver와 3M은 약 5년 동안 용도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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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ry의 책갈피 문제
- 현장 불편: 3M 직원 Art Fry가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책갈피가 자꾸 빠져 불편을 겪었다.
- 용도 재발견: Fry는 Silver의 쓸모없어 보이던 접착제를 종이에 바르면 책갈피를 붙였다 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아이디어 검증: 다음 날 종이 책갈피에 메시지를 적고 약한 접착제를 발라 상사의 책상에 붙였으며, 책갈피가 아니라 메모지로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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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테스트와 출시
- 개량의 시간: 목적에 맞게 접착제를 다듬고 제조 공정을 만드는 데 다시 몇 년이 걸렸다.
- 첫 테스트의 실패: 1977년 네 도시에서 광고했지만 소비자 반응은 미미했다.
- 사용 경험의 중요성: 한 부사장이 테스트 시장을 직접 조사한 뒤 소비자가 직접 써봐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샘플링 전환: 1978년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대규모 무료 샘플 행사를 진행했고, 사용자의 90% 이상이 구매 의향을 보였다.
- 정식 제품: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1980년 Post-it Note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1.5. 하나의 공정에서 다수 산업으로 확장한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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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기술의 확장
- 기술 원리: 입자를 기재에 코팅하고 접착하는 기본 원리는 사포, 테이프, Post-it 이후에도 유지됐다.
- 제품군 확대: 반사 시트, 마이크로복제 테이프, 폼 테이프, 안면 마스크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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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부문과 수익 구조
- 기존 네 부문: 헬스케어, 안전·산업, 운송·전자, 소비자 부문으로 나뉘었다.
- 헬스케어 분사: 2024년 매출의 약 25%를 차지하던 헬스케어 부문을 분사해 독립 상장했다.
- 안전·산업 부문: 마스크, 청력 보호구, 추락 방지 장비, 연마재, 산업용 접착제를 공급한다.
- 운송·전자 부문: 자동차 전장 소재, 디스플레이 필름, 반도체 소재, 배터리팩 조립용 열전도성 접착제 등을 다룬다.
- 소비자 부문: Post-it과 Scotch로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졌지만, 산업용 B2B 사업보다 규모와 성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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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고객의 높은 전환 비용
- 안전 브랜드의 신뢰: 3M 제품은 비싸더라도 저가품으로 바꿨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 고객이 브랜드 신뢰를 중시한다.
- 공정 고착성: 항공기 제조사가 동체 결합에 3M 구조용 접착제를 채택하면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 위해 수년의 안전성 테스트와 큰 인증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장기 매출: 한번 고객사의 제조 공정에 채택된 연마재와 접착제는 공정 자체를 바꾸기 전까지 계속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1.6. GE식 효율성이 3M의 혁신을 약화시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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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업의 공룡이라는 평가
- 정체 인식: 1990년대 말 IT·기술주가 급등할 때 3M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구산업의 공룡으로 불렸다.
- 수익화의 약점: 15% 룰로 발명품은 만들었지만 Post-it처럼 성공한 제품조차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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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McNerney 영입
- 외부 CEO: 2001년 GE 출신 James McNerney가 3M 역사상 첫 외부 CEO로 영입됐다.
- 도입 목표: GE에서 성공한 Six Sigma를 전사에 적용해 불량률을 낮추고 비용을 절감하며 생산성을 높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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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라인의 처방을 연구소에 적용한 오류
- 초기 효과: 제조 공정에서는 변동과 낭비를 줄이는 방식이 단기적으로 작동했다.
- R&D의 본질과 충돌: 연구·혁신은 처음부터 효율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많은 실패 중 일부가 새로운 제품이 되는데 Six Sigma는 이런 비효율을 제거하려 했다.
- 문화적 변화: 도전적 신제품보다 기존 연마재의 거칠기를 조금 조정하는 식의 점진적 개선이 늘었고, 신제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락했다.
- 뒤늦은 완화: 후임 CEO들이 R&D 적용을 완화했지만 이미 조직은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바뀐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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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헬스케어 분사
- 사업 시너지 부족: 네 사업 부문은 서로 충분한 시너지를 내지 못했고, 성장이 낮은 소비자 부문이 실적을 갉아먹었다.
- 소송 리스크: 군용 귀마개 결함과 PFAS 등 소재의 환경 오염 문제로 대규모 소송과 합의금 부담이 생겼다.
- 분사 이유: 가장 이질적인 헬스케어 부문을 독립시켜 사업 구조를 단순화하고, 매각 대금으로 합의금 부담을 덜었다.
- 장기 비용: 2001년 GE식 CEO를 영입한 결정의 후유증으로 3M은 20년 넘게 구조조정을 겪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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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남은 과제
- 산업재 기업으로의 변신: 현재 3M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산업재를 생산·판매하는 기업에 가까워졌다.
- 방어 전략: 비용 절감과 공급망 재설계로 경기 하강을 견디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 소비자 부문 정리: 소비자 부문을 분리하거나 수익성 높은 제품만 남기고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 미해결 문제: 기술 혁신을 통한 새 수익원 창출과 남아 있는 소송 리스크가 회복의 핵심 변수다.
2. Boeing과 Airbus: 후발주자가 게임의 규칙을 바꾼 방식
에어버스는 기술·가격·금융·공통성에서 보잉의 빈틈을 공략했고, 보잉은 GE식 비용 중심 경영과 과도한 아웃소싱으로 엔지니어링·품질·신뢰를 약화시켰다.
2.1. 보잉이 만든 제트기 시대와 규모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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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보잉의 압도적 우위
- 747의 충격: 1966년 런던 히스로 공항에 전시된 747 목업은 당시 보잉과 유럽 항공업계 사이의 격차를 상징했다.
- 707의 에어쇼: 1955년 25만 관중 앞에서 수석 테스트 파일럿 Alvin Johnston이 707 프로토타입으로 360도 배럴 롤을 두 번 연속 선보였다.
- 판매를 위한 묘기: 회장 Bill Allen이 위험한 기동을 질책하자 Johnston은 “비행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이라고 답했다.
- 시장 개막: 한 달 뒤 Pan Am이 20대의 707을 주문했고, Air France와 KLM도 잇달아 주문하면서 상업 제트기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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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기의 산업적 효과
- 운송 혁신: 707과 727은 프로펠러 여객기보다 빠르고 많은 승객을 태우면서도 비용이 낮았다.
- 737의 독점력: 1968년 상업 운항을 시작한 737은 단거리 시장에서 사실상 대체재가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 개발비 급증: 747 개발비는 약 10억 달러로 당시 보잉 전체 자산보다 컸고, 매출의 절반 이상에 해당했다.
- 손익분기점: 새 항공기는 대략 500~600대 이상 팔리지 않으면 개발비를 회수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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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항공업계의 공동 대응
- 공동 개발의 필요: 개별 국가 항공사가 100대 안팎만 구매하는 시장에서는 미국 기업과 맞설 개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 에어버스 출범: 프랑스·독일·영국이 공동 항공기 회사를 만들기로 했고, 스페인까지 생산에 참여하면서 1969년 Airbus Industrie 창립이 발표되고 1970년 회사가 등록됐다.
2.2. A300: 쌍발 광동체에 건 에어버스의 첫 번째 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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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장을 선택하다
- 당시 규제: 쌍발기는 엔진 하나가 고장 나면 추력이 절반으로 줄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공항에서 60분 이내에 운항해야 했다.
- 시장 공백: 장거리는 4발기, 중거리는 3발기가 맡았고 중거리 쌍발 광동체는 비어 있었다.
- 에어버스의 예측: 엔진 신뢰성이 개선되면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 보고, 최초 기종 A300을 중거리 쌍발 광동체로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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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출발점
- 디지털 설계: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대신 CAD로 복잡한 형상을 3D 시뮬레이션해 실물 모형 제작 비용을 낮췄다.
- 슈퍼크리티컬 날개: NASA가 발표한 날개 단면을 적용해 항력을 줄이고 더 빠른 순항과 같은 속도에서의 연비 개선을 노렸다.
- 보잉의 지연: 보잉은 기존 707·727·737 생산라인 전체를 건드려야 한다는 이유로 채택을 미뤘고, 12년 뒤 757·767에서야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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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생산의 대가
- 역할 분담: 프랑스는 동체와 최종 조립, 독일은 동체 일부와 날개 탑재, 영국은 주 날개 생산을 맡았다.
- 최종 조립: 각국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프랑스 툴루즈로 운송해 조립했다.
- 비효율의 이유: 운송비와 시간이 늘었지만 참여 국가의 공장과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필요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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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판매 실패와 반전
- 출시: A300은 1972년 첫 비행에 성공했고 1974년 Air France의 파리-런던 노선에 투입됐다.
- 수요 부진: 1971년부터 4년간 주문은 고작 14대였고, 1차 오일쇼크와 검증되지 않은 유럽산이라는 이미지가 판매를 막았다.
- 제품 경쟁력: DC-10보다 가격이 20% 낮고 연비도 좋았지만 보수적인 항공사들은 Boeing·McDonnell Douglas·Lockheed를 선호했다.
- 아시아 진입: 1977년 Thai Airways, Singapore Airlines, Philippine Airlines가 주문했다. 역사가 짧은 아시아 항공사들은 보잉에 대한 관성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저렴한 가격과 짧은 납기에 끌렸다.
- Eastern Airlines 실험: A300 네 대를 6개월 무료 리스로 제공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환할 수 있게 했다. 마음에 들면 23대 확정·9대 옵션을 15% 할인하고 프랑스·독일 수출신용기관이 낮은 이자로 구매 자금을 빌려주는 조건이었다.
- 검증 효과: Eastern은 경쟁 기종보다 연비가 약 20% 좋고 좌석당 운영비가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6개월 뒤 옵션까지 행사해 총 32대를 운용했다.
- 신뢰의 전환: 미국 대형 항공사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며 에어버스는 안 팔리는 비행기에서 팔리는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로 바뀌었다.
2.3. A310·A320과 공통 조종실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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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10의 2인 조종실
- 시장 목표: 1978년 A300보다 작은 200석급 중장거리 기체 개발에 착수했다.
- 운영비 절감: 당시 중장거리 항공기의 표준이던 3인 조종실에서 2인 조종실로 바꿔 인건비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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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20과 Fly-by-Wire
- 시장 진입: 1981년 개발에 착수한 A320은 150석급 단거리 협동체 시장에서 Boeing 737과 DC-9에 도전했다.
- 기계식 조종의 한계: 케이블·유압식 조종계는 직관적이지만 조종사가 허용 범위를 넘어 조작하면 실속이나 기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 디지털 제어: Fly-by-Wire는 조종사 입력을 전기 신호로 비행 제어 컴퓨터에 보내고, 컴퓨터가 과도한 입력을 제한해 실속·과속·과도한 하중을 막는다.
- 중량 절감: 무거운 케이블 대신 전선을 사용해 기체 중량과 연료 소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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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항기 최초 적용의 안전 설계
- 신뢰성 우려: 당시 Fly-by-Wire는 군용기에 주로 쓰였고, 컴퓨터가 고장 나면 여객기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로 민항기 적용을 꺼렸다.
- 다중화: A320은 독립된 비행 제어 컴퓨터 다섯 개, 서로 다른 하드웨어 아키텍처 두 개,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팀과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했다.
- 기계적 백업: 모든 컴퓨터가 고장 나도 수직꼬리와 수평꼬리 일부는 기계식으로 조작할 수 있게 했다.
- 설계 철학: Roger Beteille은 기능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상업 항공의 본질을 바꾸는 문제라고 보고 내부 반발에도 도입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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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종 공통성이라는 항공사 가치
- 동일한 조종 감각: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기종이 달라도 조종 반응이 동일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 공통 레이아웃: A320 이후 모든 에어버스 기종의 조종실 배치와 절차를 통일했다.
- 교차 자격: 한 기종 자격을 가진 조종사는 10일 이하의 짧은 훈련만으로 다른 에어버스 기종도 운항할 수 있는 Cross-Crew Qualification을 적용받았다.
- 항공사 효율: 조종사 풀을 유연하게 배분해 가동률을 높이고, 조종사 훈련·유지 비용을 보잉보다 약 30~40% 낮췄다.
- 보잉과의 차이: Boeing은 757·767, 777·787처럼 일부 기종끼리 공통성을 만들었지만 전 라인업을 관통하는 동일한 철학과 절차를 구현하지 못했다.
- 737의 예외: 1967년 설계된 737은 지상고가 낮아 큰 엔진을 달려면 전면 재설계와 단종이 필요했기 때문에 케이블식 조종계가 유지됐다.
2.4. 공격적 미국 영업과 United Sh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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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west Airlines 계약
- 영업 인물: 1985년 CEO Jean Pierson과 북미 영업 책임자 John Leahy가 에어버스 세일즈의 핵심 인물로 합류했다.
- 파격 조건: 1986년 Northwest에 10대 확정·90대 옵션을 제시하면서 가격·인도 일정·옵션 조건을 100대 구매 기준으로 적용했다.
- 결과: Northwest는 A320 도입을 발표했고, 이후 옵션을 행사해 80여 대를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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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Airlines의 무위약금 리스
- 조건: 1988년 A320 25대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약금 없이 반환할 수 있는 리스 조건을 제시했다.
- 검증 결과: American은 25대 전부를 보유하고 10대를 추가 주문했으며 반환 옵션은 한 대도 행사하지 않았다.
- 선두의 대응: Boeing도 757·767-300 판매를 위해 같은 무위약금 조건을 제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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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사를 통한 확장
- 항공기의 생존성: 1991년 Pan Am이 파산한 뒤 리스사가 A320을 인수해 다른 항공사로 옮겼고, 그 항공사까지 파산해도 다시 다른 회사로 재배치했다.
- 전략 전환: 항공사는 망해도 비행기는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리스사 중심으로 영업을 바꿨다.
- 중립적 구매자: 리스사는 보잉에 충성할 이유가 없었고, 좋은 가격과 조건을 제시한 에어버스를 적극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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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United Shock
- 보잉의 거절: Boeing 최대 고객인 United Airlines가 이미 계약한 737-300 일부를 737-400으로 바꾸고 대량 구매 단가를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잉은 계약은 계약이라며 거절했다.
- 에어버스의 카드: United CEO Stephen Wolf는 보잉의 태도에 실망해 Pierson과 Leahy에게 연락했고, 에어버스는 50대 확정 주문과 옵션을 합쳐 약 30억 달러 규모의 계약에 카탈로그 가격 대비 35% 할인, 수출신용, 1993년 조기 인도, A320 패밀리 가격 보호를 제시했다.
- 보잉의 뒤늦은 대응: Boeing CEO Frank Schrontz는 5억 달러 추가 할인과 엔진 가격 조정을 제안하고 주문이 겹치는 항공기 문제로 압박했지만 Wolf는 움직이지 않았다.
- 시장 충격: 1992년 United가 A320 50대 주문을 발표하면서 미국 1위 항공사가 에어버스를 선택했고, 보잉이 에어버스를 진지한 경쟁자로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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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의 방어와 에어버스의 확장
- 보잉의 독점 계약: American·Delta·Continental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고, American과는 20년간 103대 확정·527대 옵션, 카탈로그 가격 약 40% 할인, 가격 보호, 에어버스 구매 금지 조건을 체결했다.
- 에어버스의 점유율: Jean Pierson과 John Leahy가 영업을 이끌던 1985년 미국 시장 점유율 13%가 1994년 25%로 상승했다.
- US Airways 일화: 1997년 Steve Wolf가 CEO로 있던 US Airways와 A320 130대 협상에서 5% 추가 할인을 요구하자 Pierson은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며 더 줄 것이 없다고 농담했고, Wolf는 웃으며 계약을 체결했다.
2.5. McDonnell Douglas 합병과 보잉의 문화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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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Donnell Douglas의 쇠퇴
- 제품 경쟁: MD-80·MD-90이 737과 A320에 밀렸고, MD-11은 초기 예상보다 성능이 떨어져 약 200대만 판매된 뒤 단종됐다.
- 재무 압박: 연속된 개발 실패로 신규 기체 개발 예산이 사라져 회사 매각이 유일한 선택지로 떠올랐다.
- Harry Stonecipher: 1994년 GE에서 27년 근무한 Stonecipher가 CEO로 와서 인력 감축, R&D 축소, 비핵심 사업 매각, 자사주 매입으로 매각에 유리한 숫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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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보잉과의 합병
- 보잉의 동기: 상업 항공은 경기와 주문 취소에 취약했기 때문에 군수 부문을 강화하고 McDonnell Douglas라는 경쟁자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 표면과 실제: 보잉이 세 배 큰 회사로 McDonnell Douglas를 인수한 것처럼 보였지만, McDonnell 출신 재무·정치 전문가들이 합병 후 주요 자리를 장악했다.
- 문화 충돌: 보잉 엔지니어는 사실을 말하면 통한다고 믿었고, McDonnell Douglas는 국방 계약·재무 관리·이사회 정치에 강했다.
- 유명한 평가: 한 연방 공무원은 보잉 엔지니어를 보이스카우트, McDonnell Douglas 인사를 헌터킬러·어새신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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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에서 수익성으로
- 권력 이동: Phil Condit는 합병 뒤 조직·인사 통합을 장악하지 못했고 Stonecipher가 실질적 권력을 쥐었다.
- 설계 공백: 1994년 777 이후 787이 나오기까지 15년 동안 완전한 백지 설계 없이 737·757·767 파생형만 만들었다.
- R&D 축소: 보잉의 R&D 비율은 2% 후반대였지만 같은 시기 에어버스는 약 4.5%를 투자했다.
- 노조와 엔지니어의 약화: 1999년 2만 3천 명의 기술자 파업은 7,500만 달러 규모의 급여·복지 차이를 표면에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경영진이 엔지니어를 비용으로만 취급한 데 대한 분노였다.
- 정치적 결과: 파업으로 보잉은 7억 5천만 달러 손실을 감수하면서 엔지니어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했고, 이후 프로젝트 계약직과 외주 채용을 늘렸다.
- 본사 이전: 2001년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옮기면서 제조 현장과 엔지니어 중심 문화가 더 멀어졌다.
2.6. A380 대 787: 허브와 직항의 미래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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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의 초대형 허브 전략
- 수요 전망: 향후 20년간 항공 여객 시장이 2.5배 커지면 런던 히스로, 뉴욕 JFK, 싱가포르 창이 같은 허브 공항의 이착륙 슬롯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 A380 구상: 공항을 새로 짓기 어려우므로 한 번에 더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는 555석급 초대형 광동체 A380을 개발했다.
- 효율성: 747보다 좌석 거리당 연료 소비가 20% 이상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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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의 Point-to-Point 전략
- 승객 행동 변화: 승객은 허브에서 환승하기보다 직항을 선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 787 구상: 중형기가 장거리를 효율적으로 날아 허브 없이 도시를 연결하는 230석 안팎·14,000km 항속거리 항공기를 개발했다.
- 시장 선택: 2001년 9·11 테러 이후 항공사의 최우선 순위가 비용 절감과 연료 효율이 되면서 787의 방향이 유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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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80의 구조적 패배
- 수요 검증 실패: 2005년 A380 행사와 같은 날 보잉이 787 60대 주문을 발표하면서 초대형 기체의 수요 부족이 드러났다.
- 중형 쌍발기의 대체: 777과 A330이 200~350석급으로 장거리를 경제적으로 날았고, LCC가 허브 없이 직항 노선을 확대했다.
- 역설: 에어버스는 1990년대부터 LCC와 계약하며 성장했지만, 그 변화를 확인하고도 허브·초대형기 전략에 배팅했다.
- 판매 결과: A380은 약 250대 판매 후 단종됐고, 787은 2024년 기준 1,100대 이상 판매됐다.
2.7. 787 아웃소싱과 공급망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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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외주화의 설계
- 비중: 787 주요 부품의 약 70%를 외부 파트너에게 맡기고 보잉 직접 제작은 30% 이하로 줄였다. 767과 777의 외주 비중은 10~20% 수준이었다.
- 경영 목표: 파트너가 개발비를 부담하는 리스크 셰어링으로 보잉의 개발비를 줄이고, 참여국 항공사의 주문을 유도하며, 자체 공장·설비 투자 축소로 자본수익률을 높이려 했다.
- 런칭 고객: 일본 ANA가 787의 런칭 고객이 됐고, 일본 3대 중공업사에 개발·생산을 맡긴 것이 주문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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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의 경고
- 통합 비용: L.J. Hart-Smith 같은 보잉 시니어 기술 펠로우들은 수십 개 공급자의 부품을 통합하면 부품 가격에 보이지 않는 관리·통합 비용이 더해진다고 경고했다.
- 품질 감독: 공급자 품질을 보잉 수준으로 맞추려면 대규모 감독 인력이 필요하며, Apple이 공급사를 직접 돌아다니며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역량 손실: 장기적으로 설계·생산 노하우가 보잉 밖으로 빠져나가 내부 기술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묵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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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식 비용 압박과 도덕적 붕괴
- 공중급유기 스캔들: 2001년 미국 국방부 공중급유기 교체 사업에서 국방부 조달 책임자와 보잉 임원의 이직을 조건으로 경쟁사 입찰가를 건네받은 사건이 터져 사업 취소와 벌금이 발생했다.
- 비용 절감의 압박: 보잉은 스캔들 충격을 줄일 새 성장 제품이 필요했고, 그것도 더 저렴하게 개발해야 했다.
- CEO 교체: Phil Condit가 사임하고 Stonecipher가 뒤를 이었으며, Stonecipher도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2005년 해임됐다.
- McNerney의 계승: 후임 James McNerney는 GE에서 배운 숫자 중심·엔지니어 억제형 경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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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개발과 인도 지연
- 가짜 공개 기체: 2007년 공개된 첫 787은 실제 비행 가능한 완성 기체가 아니었다. 출입문을 판자로 만들고 부품 일부가 빠졌으며, 일반 볼트로 임시 체결하는 등 가짜 부품으로 완성도를 연출했다.
- 공급망 통제 실패: 짧은 기간에 분산시킨 공급망을 관리하지 못해 각 부품의 결합과 품질이 엉망이 됐다.
- 인도 지연: 2008년 5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던 인도가 3년 반 밀려 2011년 말에야 가능해졌다.
- 개발비 폭증: 개발비는 320억 달러를 넘어섰다.
- 찰스턴 라인: 2009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 비노조 조립라인을 세워 시애틀보다 낮은 임금으로 비용을 줄이고 기존 시애틀 공장·노조를 압박했다.
- 품질 반복: 숙련된 시애틀 엔지니어와 노하우를 무시하고 새 공장을 돌리면서 세 공장 조립 기체의 결함과 결합 문제가 계속 발견됐다.
2.8. 737 MAX: 오래된 플랫폼을 소프트웨어로 덧댄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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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20neo에 대한 재무적 대응
- 에어버스의 선택: 2010년 A320 후속으로 7~10년짜리 백지 설계 대신 엔진만 교체하는 A320neo를 선택했다.
- 보잉의 약점: 787 공급망 재앙으로 이연 비용이 누적되고 747-8 판매도 부진해 완전한 신형기 개발 여력이 없었다.
- 737 MAX: 보잉은 예상대로 2011년 737 리엔진 모델인 737 MAX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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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 물리와 엔진 배치의 충돌
- 낮은 지상고: 1967년 설계된 737은 지상고가 낮아 신형의 큰 엔진을 기존 위치에 달면 활주로에 닿거나 이물질을 흡입할 위험이 있었다.
- 전방·상향 이동: 엔진을 앞으로 위로 옮기자 공기역학적 중심이 바뀌어 상승 시 기수가 들리는 피치업 성향이 강해졌다.
- 안전 문제: 제어하지 않으면 실속 위험이 커지는 물리적 문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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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AS라는 소프트웨어 땜질
- 고객 조건: American Airlines는 2017년 인도를 요구했고, Southwest는 기존 737 자격만으로 시뮬레이터 훈련 없이 운항할 수 있기를 원했다.
- 시스템 역할: 특정 조건에서 기수가 과도하게 올라가면 MCAS가 자동으로 기수를 내리도록 설계했다.
- 정보 은폐: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면 조종사 훈련과 인증이 복잡해지므로 조종사에게 MCAS의 존재를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
- 단일 센서: 받음각(angle of attack) 센서를 하나만 달아 센서 오류가 MCAS 오작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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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고와 신뢰 붕괴
- Lion Air 610편: 받음각 센서가 21도 어긋난 데이터를 보내 MCAS가 기수를 반복적으로 내렸다.
- Ethiopian Airlines 302편: 센서 오류로 MCAS가 기수를 내리는 명령을 내렸다.
- 조종사 대응 불능: 시스템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조종사들은 기체가 왜 계속 기수를 내리는지 알기 어려웠다.
- 운항 중지: 6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신형기 두 대가 추락했고 737 MAX는 전 세계 운항 정지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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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 위기와 회복 시도
- 팬데믹과 감원: 2020년 팬데믹으로 현금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3만 명을 감원했다.
- Alaska Airlines 사고: 2024년 737 MAX 9에서 비행 중 도어 플러그가 떨어져 품질 관리 시스템의 붕괴가 드러났다.
- 경영진 교체: Dave Calhoun이 물러나고 엔지니어 출신 Kelly Ortberg가 CEO로 취임했다.
- 방향 전환: Ortberg는 본사를 시애틀로 되돌리고 생산 속도보다 품질과 엔지니어링 문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 현재 격차: 에어버스 점유율은 약 57%, 보잉은 약 43%이며, 에어버스의 누적 주문이 많아 향후 10년 안에 보잉이 재추월하기는 어렵다고 평가된다.
3. GE와 잭 웰치식 경영의 탄생
GE식 경영은 관료적 복합기업을 정리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강했지만, 숫자를 만들기 위해 기술·사람·윤리를 희생하는 구조를 낳았다.
3.1. 위기에 빠진 거대 복합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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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원래 모습
- 미국의 상징: 발전기, 냉장고, 항공기 엔진 등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초대형 복합기업이었다.
- 구조적 문제: 사업부가 지나치게 크고 방대해 의사결정이 느렸으며, 일본 제조기업의 부상으로 경쟁도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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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압력
- 미국 경기 변화: 호황이 끝나고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 금리 충격: 1979년 연준 의장이 된 Paul Volcker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 핵심 사업 타격: 설비투자 이자 비용과 소비자 신용이 위축되면서 가전·산업 장비·조명 사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3.2. Jack Welch의 구조조정과 Rank-and-Y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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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CEO의 등장
- 취임: 1981년 잭 웰치가 GE 역사상 최연소 CEO가 됐다.
- 문화적 단절: GE를 거대한 가족처럼 보던 전통과 달리, 웰치는 GE를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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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2위 원칙
- 명령: 각 사업부가 해당 시장 1위 또는 2위가 아니면 고치거나 닫거나 팔라고 지시했다.
- 정리 규모: 1980년대 초 10만 명 넘는 직원이 해고됐고, 1990년까지 200개 넘는 사업부가 매각·폐쇄됐다.
- 별명: 건물은 남겨두고 사람만 사라지게 하는 중성자 폭탄에 빗대어 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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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포트폴리오 정리의 양면성
- 타당한 방향: 관료주의를 없애고 잘되는 사업에 집중하는 방향 자체는 경쟁력 회복에 필요한 조치였다.
- 위험한 확장: 성장 동력으로 금융과 미디어처럼 GE의 전통적 기술 역량과 거리가 먼 사업까지 확장했다.
- 잘못된 자신감: GE가 경영자 사관학교라는 명성 때문에 GE 출신 경영자가 어떤 사업에 가도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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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10% 퇴출
- 등급화: 매년 직원을 상위 20% A, 중간 70% B, 하위 10% C로 분류했다.
- 자동 해고: 하위 10%를 성과와 맥락을 충분히 따지지 않고 내보내는 Rank-and-Yank 시스템을 운용했다.
- 확산: 많은 미국 기업이 이 방식을 받아들였고, Amazon 같은 테크 기업에도 유사한 관행이 존재한다.
- 부작용: 내부 경쟁과 단기 성과 압박이 심해졌고, 나쁜 소식을 위로 올리면 안 된다는 인식과 긍정적 숫자만 보고하는 왜곡 문화가 생겼다.
3.3. GE Capital과 숫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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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자금의 활용
- 신용등급: 당시 GE의 트리플A 등급은 미국 기업 중에서도 드물 정도로 높았고, 은행 대출보다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저렴했다.
- 금융화: 조달한 돈을 발전기나 산업 설비에만 투자하지 않고 GE 제품을 사는 소비자에게 할부 금융으로 빌려줬다.
- GE Capital: 은행이 아니면서 은행처럼 금융 사업을 운영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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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껍데기를 쓴 은행
- 매출·이익 비중: GE Capital은 GE 전체 매출의 약 40%, 이익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사업이 됐다.
- 사업 본질의 변화: GE는 제조기업의 외피를 쓴 금융회사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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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관리와 월스트리트의 신뢰
- 자산 매각: 산업 부문 실적이 부진하면 GE Capital의 자산을 매각해 실적을 보완했다.
- 예측 충족: 월스트리트가 예상한 이익 성장치에서 1%도 벗어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기업으로 칭송받았다.
- SEC 조사: 잭 웰치 은퇴 후 SEC는 GE가 회계 규칙의 한계를 넘어 수익을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 웰치의 반론: 웰치는 조작이 아니라 경영자의 능력이며 정당한 방식이라고 방어했지만, SEC는 법적 선을 넘은 부정행위로 비판했다.
3.4. Six Sigma의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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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의 원래 의미
- 출발점: Six Sigma는 1985년 Motorola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 품질 기준: 6 표준편차 수준, 즉 공정 불량을 100만 개당 3.4개까지 줄이는 품질 관리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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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식 전사 적용
- 적용 범위 확대: Motorola가 공정 품질을 위해 사용한 기법을 웰치는 비용 절감과 변동성 제거를 위해 모든 프로세스에 적용했다.
- 단기 효과: 제조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성과가 나타났다.
- GE의 발표: GE는 도입으로 12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효과의 정확한 규모는 GE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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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에 대한 부작용
- 불확실성 제거: 변동과 실패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연구원과 엔지니어가 보수적으로 변했다.
- 점진 개선의 안주: 완전히 새로운 제품보다 기존 제품을 조금 개선하는 방식이 안전한 선택이 됐다.
- 구조적 역설: 관료주의를 해체해 GE를 혁신한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인재·사업의 취약성을 키웠다.
4. GE식 경영을 이식한 기업들의 연쇄 실패
GE식 처방은 기업마다 다른 핵심 역량을 무시했을 때 3M의 혁신, Home Depot의 고객 경험, Siemens의 윤리, Boeing의 안전을 훼손했다.
4.1. 3M: 연구개발에 Six Sigma를 적용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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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배경
- 기대: 3M은 GE의 주가 상승과 이익 성장을 재현하기 위해 2001년 GE 출신 McNerney를 영입했다.
- 오용: 제조라인에는 맞는 Six Sigma를 R&D에도 일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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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창의성 위축: 실패와 시행착오가 필요한 신제품 개발이 허용할 수 없는 비효율로 취급됐다.
- 장기 구조조정: 3M은 McNerney의 결정 이후 20년 넘게 구조조정을 겪게 됐다.
4.2. Home Depot: 숫자는 개선됐지만 고객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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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Nardelli의 배경
- GE 경력: Nardelli는 GE에서 약 30년 일했고 GE Power Systems를 이끌며 영업이익을 5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키웠다.
- 별명: GE식 경영에 깊이 빠져 Little Jac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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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교체
- 창업자 문화 제거: Home Depot 창업자들이 만든 기업가적·고객 중심 문화를 없앴다.
- 통제 도입: GE 출신 임원을 대거 영입하고 지표 관리, Rank-and-Yank, Six Sigma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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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서비스의 붕괴
- 인력 구조: 숙련 정규직을 내보내고 저임금 파트타임을 늘려 비용을 낮췄다.
- 숫자 성과: 매출과 이익은 두 배로 증가했다.
- 현장 성과: 미국 소비자 만족도가 소매업체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고객과 직원 모두 반발했다.
- 결말: Nardelli는 결국 쫓겨나듯 사임했지만 막대한 퇴직 보너스를 챙겼다.
4.3. Siemens: 성과 압박이 뇌물 문화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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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식 정리
- 사업 기준: 1990년대 말 1위·2위가 아닌 사업을 정리하고 재무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 단기 결과: 강력한 인센티브와 사업 정리로 주가·매출·이익이 상승해 성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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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부작용
- 나쁜 소식 차단: 단기 실적 중심 문화가 내부의 부정적 정보를 숨기고 숫자를 마사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 뇌물 확산: 실적을 맞추기 위해 진출 지역 공무원과 관련 기관에 뇌물을 뿌리는 관행이 생겼다.
- 스캔들: 2000년대 중반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Siemens는 대혼란에 빠졌다.
4.4. Boeing: 기술기업이 가장 싼 비행기 회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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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출신 경영진의 연속
- Stonecipher: GE에서 27년 근무한 McDonnell Douglas CEO가 보잉 합병 후 엔지니어 중심 문화를 비즈니스·숫자 중심으로 바꿨다.
- McNerney: 2005년 Stonecipher 뒤를 이은 McNerney도 GE식 비용 절감과 엔지니어 억제를 이어갔다.
- Calhoun: GE에서 26년 근무하고 잭 웰치의 최측근이었던 Dave Calhoun도 안전보다 현금·재무 목표를 우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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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과 MAX
- 제조 역량 축소: 41년간 동체를 직접 조립하던 공장을 매각하고 파트너사의 설계·제작 모듈을 단순 조립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 낡은 플랫폼 활용: 새 항공기를 백지 설계하는 대신 오래된 737에 큰 엔진을 달고 소프트웨어로 물리적 문제를 보완했다.
- 인재 손실: 고연봉 베테랑 엔지니어를 해고해 엔지니어링 영향력을 더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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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주가와 장기 신뢰의 교환
- 단기 성과: 비싼 신형기 개발 대신 기존 모델의 수익성에 집중한 결과 2010~2017년 주가가 약 490% 상승했다.
- 안전 타협: 737 MAX의 개발을 서두르고 안전 기준을 낮추면서 2018·2019년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 책임 회피: 당시 CEO Dennis Muilenburg는 엔지니어링 전통보다 재무 성과를 중시했고 사고 책임을 조종사에게 돌리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 추가 이탈: Calhoun은 세금 문제를 이유로 본사를 제조 현장에서 더 먼 버지니아로 옮기고 비용 절감·아웃소싱을 이어가 2024년 도어 플러그 사고를 맞았다.
- 신뢰의 반전: 보잉은 최고의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가장 싼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으로 추락했다.
4.5. GE 자신도 GE식 모델의 희생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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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Immelt의 계승
- 경영 연속성: 잭 웰치 뒤를 이은 Jeff Immelt는 GE식 비용·금융 중심 모델을 이어갔다.
- 역량의 차이: 웰치만큼 금융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융기업이 된 GE를 운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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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Capital의 과잉 확대
- 수익률 하락 대응: 자본이익률이 떨어지자 기업어음을 더 발행해 규모를 키우고 더 많은 돈을 빌려줬다.
- 서브프라임 투자: 2000년대 중반 고수익 상품으로 떠오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도 적극 투자했다.
- 2008년 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 파산 직전까지 갔고 Warren Buffett와 미국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파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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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역량의 공동화
- 금융 축소: 금융위기 뒤 GE Capital을 크게 줄이자 GE의 수익성이 급락했다.
- 투자 부족: 비용 절감과 아웃소싱에 치중해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
- 최종 분할: GE는 2022년 헬스케어, 항공우주, 에너지 세 기업으로 분할됐다.
주요 발언 모음
“비행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사장님.”
“고치거나 닫거나 팔아라.”
“무모한 도전은 피해야 하지만 절대적인 안정성도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비효율은 생존과 혁신의 관점에서 일정 수준 필요하다.”
핵심 데이터 & 수치
- 3M 제품 수: 5만 가지 이상으로, 사무용품보다 항공·반도체·자동차·의료 소재 비중이 넓다.
- 3M 15% 룰: 업무 시간의 최대 15%를 독립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었다.
- Post-it 개발: 1968년 약한 접착제 개발, 약 5년간 용도 탐색, 1977년 4개 도시 테스트, 1978년 보이시 샘플링, 1980년 정식 출시.
- 3M 헬스케어 분사: 2024년 당시 매출 약 25%를 차지하던 사업을 독립시켰다.
- A300 초기 판매: 4년간 14대 주문에 그쳤으나 Eastern Airlines가 6개월 시험 후 총 32대를 운용했다.
- A300 경쟁력: DC-10보다 가격이 약 20% 낮고 연비도 약 20% 우수했다.
- A320 공통성: 교차 자격 훈련을 10일 이하로 줄이고 보잉 대비 조종사 훈련·유지 비용을 약 30~40% 낮췄다.
- United Shock: 1992년 United의 A320 50대 주문, 약 30억 달러 계약, 카탈로그 가격 대비 35% 할인.
- 보잉 감원: 1993년 2만 8천 명 해고와 생산 47% 축소.
- 787 아웃소싱: 주요 부품 약 70%를 외부 파트너가 제작했다.
- 787 지연: 2008년 예정 인도가 3년 반 지연돼 2011년 말 시작됐고 개발비는 320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다.
- A380 대 787: A380은 약 250대 판매 후 단종, 787은 2024년 기준 1,100대 이상 판매.
- 737 MAX 사고: Lion Air 610편(2018년), Ethiopian Airlines 302편(2019년), 단일 받음각 센서와 MCAS 오작동이 핵심 원인이었다.
- 현재 점유율: 에어버스 약 57%, 보잉 약 43%로 제시됐다.
- GE 구조조정: 1980년대 초 10만 명 이상 해고, 1990년까지 200개 이상 사업부 매각·폐쇄.
- GE Capital: GE 전체 매출 약 40%, 이익 60% 이상을 차지했다.
- Six Sigma 기준: 100만 개당 불량 3.4개.
- GE 비용 절감 주장: Six Sigma로 120억 달러를 절감했다고 발표했으나 정확한 실효는 검증하기 어렵다.
- Home Depot: Nardelli 재임 중 매출·이익은 두 배가 됐지만 소비자 만족도는 소매업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 Boeing 주가: 2010~2017년 약 490% 상승 후 2018년 추락 사고로 신뢰가 무너졌다.
결론 및 시사점
- 실패를 비용이 아니라 탐색 자산으로 설계한다: 3M의 사포 반품, Drew의 마스킹 테이프, Silver의 약한 접착제는 실패를 기록하고 재사용할 때 혁신의 원료가 됐다.
- 연구개발과 제조를 같은 효율 지표로 평가하지 않는다: 제조라인의 불량 제거에는 Six Sigma가 유효하지만, R&D에는 실패·우연·긴 숙성 기간을 허용하는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
- 후발주자는 비어 있는 카테고리를 찾아야 한다: 에어버스는 쌍발 광동체와 공통 조종실처럼 기존 강자가 외면하거나 쉽게 바꾸기 어려운 지점을 골라 시장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배팅했다.
- 고객의 전환 비용과 검증 장벽을 경쟁력으로 만든다: 항공사 조종사 공통성, 구조용 접착제 인증, 리스·가격 보호는 단순한 제품 성능을 장기 계약과 재구매로 전환했다.
- 단기 재무 목표가 본업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게 한다: Home Depot의 고객 서비스, Boeing의 안전, Siemens의 윤리처럼 숫자 개선만으로는 기업의 생존 기반을 보전할 수 없다.
- 아웃소싱은 비용표가 아니라 역량 지도와 함께 판단한다: 787의 부품 가격 절감은 통합·감독·지연 비용과 설계 노하우 상실을 불러왔고, 핵심 제조 역량을 외부에 넘긴 대가가 훨씬 커졌다.
- 성공 모델은 조건부 처방이다: GE식 경영은 거대 관료기업의 사업 정리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지만, 창의성·안전·고객 접점이 핵심인 기업에 그대로 이식되면 재앙이 된다.
- 숫자와 안정성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둔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모두 제거하면 혁신도 제거된다. 무모한 도전을 피하되, 생존과 창의를 위해 일정 수준의 비효율을 의도적으로 남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