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drwon.substack.com — 원대로(Won Dae-ro) 저장일: 2026-07-29
- 로펌도 회계법인도 컨설팅펌도, 시간 대신 결과를 파는 AI-native firm, '네오펌'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한 가지 숫자만 기억하면 된다. 미국 상위 100개 로펌이 2025년에 벌어들인 수익이 690억 달러. 구글이 1년간 R&D에 쏟아붓는 돈보다 많다. 그런데 이 690억 달러의 행방이 기막히다. 전액, 한 푼도 빠짐없이, 파트너 변호사들 연봉으로 나간다. 기술 투자? 없다. 시스템 혁신? 관심 없다. 왜? 파트너십 구조에서는 수익을 매년 배당처럼 나눠가지게 돼 있으니까.
이 구조가 100년 넘게 잘 굴러갔다. 근데 지금, AI가 변호사가 하던 "생각이 필요한 일"까지 해치우기 시작하면서 판이 흔들린다. Crosby라는 AI 로펌을 세운 Ryan Daniels가 X에 올린 글, 그리고 Sequoia Capital 팟캐스트에서 공동창업자 John Sarihan과 나눈 대화를 합치면, 이 균열의 실체가 꽤 생생하게 보인다.
1. 🏭 1856년 제철소에서 일어난 일이 지금 로펌에서 반복된다
- 베세머 이전, 철강은 숯 사이에 연철 끼워넣고 6주를 구워야 나왔다. 장인이 불꽃 색깔을 읽어가며 품질을 잡던 시대
- 헨리 베세머가 뜨거운 공기와 선철만으로 고품질 강철을 싸고 빠르게 뽑아내자, 제철소는 더 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연구소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 연구소들이 마천루와 대륙횡단 철도를 만들어냈다
- Ryan의 주장은 이거다. 지금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펌이 정확히 그 베세머의 순간에 서 있다고
- 차이가 있다면, 베세머 때는 전환에 수십 년이 걸렸다. AI 시대엔 수년이면 충분하다는 것
2. 🔄 네오펌(Neofirm) - 로펌이 아니라 R&D 조직
- 기존 전문 서비스 펌의 DNA: 파트너십 구조, 빌러블 아워, 외부 투자 차단, 이익 전액 배분. 한마디로, 돈은 잘 벌지만 미래엔 1원도 투자하지 않는 구조
- 네오펌은 이걸 통째로 뒤집는다. 실무자와 AI 엔지니어가 반반 구성. 법인이라 VC 투자 가능. 시간이 아니라 결과물에 과금
- Crosby는 빌러블 아워를 아예 없앴다. 문서당 과금. 계약서 한 건 처리하는 중앙값이 1시간 미만. 체감상 이건 로펌이라기보다 SaaS에 변호사가 붙어있는 느낌에 가깝다
- 왜 이게 혁명적이냐면 빌러블 아워 체제에서는 일을 빨리 끝내면 매출이 줄어든다. 효율의 적이 비즈니스 모델인 셈. 찰리 멍거가 살아있다면 이 구조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을 것
- SpaceX가 비용가산(cost-plus) 모델에서 고정가격 모델로 바꾼 뒤에야 로켓 재착륙이 나왔듯이,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면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가능해진다
3. 🧪 "우리 변호사 하버드 나왔어요"의 유통기한
- 1980년대 의학계에 근거중심의학(EBM)이라는 게 등장했다. 의사 개인의 감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로 환자를 치료하자는 운동. 미국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 화이트칼라 업계에선 이 운동이 안 일어났다. 업무 품질을 측정할 방법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 계약서 검토 잘 됐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 그런데 AI 연구자들이 모호한 정성 기준을 정량 평가 체계(eval)로 전환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네오펌에서는 사람이든 에이전트든, 모든 결과물에 eval이 돌아간다
- Crosby는 TTAT(Total Turnaround Time)이라는 핵심 지표를 쓴다. 계약서가 들어와서 최종 합의까지 걸리는 총 시간. 그리고 가드레일로 HuRT(Human Review Time)를 둔다. 작명이 좀 천재적인데, 사람이 개입하는 시간을 줄이자 = "아픔(Hurt)을 줄이자"
- 미래엔 변호사를 고를 때 출신 학교가 아니라 벤치마크 스코어를 물어볼 수 있게 된다. 시간당 3,000달러짜리 파트너와 1,000달러짜리 파트너 사이 차이를 실제 데이터로 비교할 수 있는 세상
4. 🪑 책상 배치가 혁신을 결정한다
- Crosby 오피스 좌석 배치: 변호사-엔지니어-변호사-엔지니어. 인테리어 취향이 아니라 전략이다
- 이전에도 시도가 있었다. Atrium(트위치 공동창업자 Justin Kan이 세운 리걸테크)과 Clearspire가 비슷한 걸 했다가 실패했다. 차이? 그때는 변호사가 하던 "생각이 필요한 일"을 기계에 넘길 수 없었다. 지금은 된다
- John Sarihan의 핵심 주장이 날카롭다. 파운데이션 모델이 90%까지는 공짜로 데려다 준다. 근데 90%에서 99.99%로 가는 건 고객별 파인튜닝과 고객별 eval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 예를 들어 계약서에서 "commercially reasonable"과 "reasonable"은 AI 임베딩 공간에선 거의 같아 보인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이런 뉘앙스는 옆자리에 변호사가 앉아있지 않으면 영원히 못 잡는다
- Ryan이 경험한 에피소드: 엔지니어만 있을 땐 엔진을 공회전시키는 느낌이었는데, 변호사가 합류하자마자 기어가 딱 물렸다고. "저건 맞고, 이건 틀리고, 이 방향으로 가야 돼" 변호사들이 즉각 피드백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확 달라졌다
5. 🤖 AI 에이전트끼리 계약 협상하는 세상
- Crosby의 궁극 비전: 양측 에이전트가 각자 당사자의 리스크 선호도, 마지노선, 협상 지구력을 장착한 채로 계약 협상을 시뮬레이션한다
- 1차 라운드부터 7차 라운드까지 돌리고, 감사 가능한 기록과 함께 최종 합의안을 사람에게 보여준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가요?"라고 물으면서
- Ryan이 웃기는 소리를 한다. "테이블을 내리치는 에이전트도 필요하다"고. Sequoia의 Sonya Huang이 바로 받았다. "그게 컴퓨팅을 더 많이 쓰는 에이전트겠네요."
- 중요한 건 이게 적대적 협상이 아니라 협력적 협상이라는 점이다. 양쪽이 더 빨리 합의에 도달하도록 돕는 플랫폼
6. 🌊 변호사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없던 시장을 만든다
- 미국 로펌 11,000개가 전체의 8%인데 매출의 75%를 차지한다. 나머지 92%는 개인 고객 상대하는 소형 로펌들
- 문제는 이 소형 로펌들이 서비스하는 영역(임대차, 양육비, 고용계약)에서 변호사 서비스를 제대로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대안이 "없음"
- Ryan의 핫테이크: 이 영역이 완전 자동화된다.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안 하던 일을 AI가 하는 것. 솔직히 지금도 집 계약서 ChatGPT한테 물어보는 사람 꽤 있지 않나
- 반면 Fortune 500 대상 복잡한 기업 법무는 상당 기간 사람이 필요하다. 핵심은 언제 에이전트가 멈추고 변호사에게 넘길지를 정확히 아는 것. Crosby는 이걸 위해 의료과실 보험까지 들고 모든 업무에 법적 책임을 진다
7. 🔮 네오펌은 SaaS를 사지 않는다. 직접 만든다
- Crosby 초기에 시중의 리걸 AI 도구를 전부 써봤다. 다 부족했다. 처음엔 짜증, 금방 실존적 위기감으로 바뀌었다고
- 결론: 자체 기술 개발 외에 답이 없었다. 기성 SaaS를 사거나 벤더에 기능 요청하는 시대는 네오펌에게 이미 끝났다
- 네오펌과 일하는 경험은 "더 빠른 변호사"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모든 요청에 ETA가 붙고, 내 사업 맥락을 놀라울 정도로 기억하고, 세무사가 감사 확률을 예측해주는 세상
- 머지않아 소프트웨어 회사와 서비스 회사의 경계 자체가 사라진다
Ryan이 Fortune 500 통신사의 법무총괄을 만났을 때 얘기다. "AI 써봤냐"고 물으니까, CEO가 계속 하라고 하는데 자기는 거부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답했다고. 이 사람이 틀린 건 아니다. 변호사는 안정성과 리스크 회피로 먹고사니까. 근데 그게 바로 함정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새 기술 빨리 쓰면 보상받고, 전문직은 변화를 거부해야 보상받는 구조. 네오펌은 이 구조적 모순을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 풀겠다는 시도다.
법률뿐 아니라 회계, 컨설팅, 보험, 투자은행 등 시간을 파는 모든 전문 서비스 업종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시간을 팔 것인가, 결과를 팔 것인가."
핵심 요약 (20줄)
- 미국 상위 100개 로펌이 2025년 벌어들인 690억 달러 수익이 전액 파트너 연봉으로 나가며 기술 투자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 AI가 변호사의 "생각이 필요한 일"까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100년 넘게 유지된 파트너십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 AI 로펌 Crosby의 창업자 Ryan Daniels가 X 게시글과 Sequoia 팟캐스트에서 이 균열의 실체를 설명한다.
- 1856년 베세머 제강법이 제철소를 공장에서 연구소로 바꿨듯, 지금 로펌·회계법인·컨설팅펌이 같은 전환점에 서 있다고 비유한다.
- 다만 베세머 시대엔 전환에 수십 년이 걸렸지만 AI 시대엔 수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 '네오펌(Neofirm)'은 실무자와 AI 엔지니어가 반반 구성된 조직으로, 파트너십이 아닌 법인 형태라 VC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소개한다.
- Crosby는 빌러블 아워를 없애고 문서당 과금하며, 계약서 한 건 처리 중앙값이 1시간 미만으로 SaaS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 빌러블 아워 체제에서는 일을 빨리 끝낼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 SpaceX가 비용가산 모델에서 고정가격 모델로 바꾼 뒤 로켓 재착륙이 가능해졌듯, 인센티브 구조 전환이 혁신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 1980년대 의학계의 근거중심의학(EBM)처럼, 네오펌은 정성적 업무 품질을 정량 평가 체계(eval)로 전환한다고 설명한다.
- Crosby는 계약 총 처리 시간(TTAT)과 사람 개입 시간(HuRT)을 핵심 지표로 삼아 사람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미래엔 변호사를 고를 때 출신 학교가 아니라 벤치마크 스코어로 비교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 Crosby 사무실은 변호사와 엔지니어를 번갈아 앉히는 좌석 배치로 협업을 전략적으로 설계했다고 소개한다.
- 과거 Atrium과 Clearspire 같은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그때는 AI가 "생각이 필요한 일"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파운데이션 모델이 90%까지는 무료로 데려다주지만, 90%에서 99.99%로 가려면 고객별 파인튜닝과 고객별 eval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 "commercially reasonable"과 "reasonable"처럼 AI에게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으로 완전히 다른 표현을, 옆자리 변호사가 즉각 잡아준다는 사례를 든다.
- Crosby의 궁극적 비전은 양측 AI 에이전트가 리스크 선호도와 마지노선을 반영해 계약을 시뮬레이션하고, 감사 가능한 기록과 함께 최종안을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 미국 로펌의 8%가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반면, 나머지 92%가 서비스하는 임대차·양육비·고용계약 영역은 대안이 거의 없어 AI가 새 시장을 만들 것이라 전망한다.
- Fortune 500 대상 복잡한 기업 법무는 당분간 사람이 필요하며, 핵심은 언제 에이전트가 멈추고 변호사에게 넘길지 아는 것이라고 짚는다.
-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신기술을 빨리 쓰면 보상받지만 전문직은 변화를 거부해야 보상받는 구조적 모순을, 네오펌이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 풀려는 시도라고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