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다시 던지기
"AI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는 감정적으로 무거운 질문이지만, 저자는 이 질문 자체가 너무 좁다고 말한다. 더 깊은 질문은 "직업(job)에 이렇게까지 의존하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직업은 단순히 유급노동 계약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소득·목적·지위·훈련·정체성·시간·복지·연금·안정·소속감을 분배하는 그릇(container) 그 자체였기 때문에, AI발 일자리 논쟁이 이토록 깊이 파고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짚는다.
직업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설계물이었다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직업"이라 부를 만한 형태 없이 일했다 — 농사짓고, 거래하고, 돌보고, 요리하고, 고치고, 사냥하고,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고, 공동체에 기여했다. 원격근무도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 노동자들은 부엌이나 침실에서 드레스, 신발, 성냥갑을 만들었다. 방적기·역직기 같은 기계화로 흩어져 있던 노동이 공장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현대적 직업"이 만들어졌다. 12시간 노동일을 만들었고, 10시간 노동일을 위해 싸웠고, 주 5일제와 주말을 발명했다. 즉 직업은 애초부터 자연법칙이 아니라 설계되고, 다투어지고, 재설계되어온 것이다.
진짜 위험: 일자리 없는 세상이 아니라 "초보자 없는 세상"
저자는 진짜 위험은 일자리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완전 초보자(absolute beginners)"가 발 디딜 곳이 없는 세상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경로 자체가 점점 좁아지고, 험해지고,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 미국에서는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AI 언급에 야유(booing)를 보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이는 기술 자체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일을 둘러싼 사회계약이 깨졌다는 항의다. 앞선 세대는 교육·근면·신입 일자리가 곧 커리어 상승·내집마련·재정 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믿을 수 있었지만, 많은 젊은 세대에게 그 거래는 이미 깨진 것처럼 보인다.
- 영국의 사례가 경고를 준다: Alan Milburn의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16~24세 청년 100만 명 이상(약 8명 중 1명)이 교육·고용·훈련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NEET).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의 거의 60%는 취업 경험 자체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 중 84%는 일·교육·훈련을 원한다고 답했다 — 이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이 더 이상 이들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킬만이 아니라 진입 경로(routes in) 자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포스트잡 세상"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분배 문제다
저자는 포스트잡(post-job) 세상이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지금 여기 존재하는 "분배의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포트폴리오 커리어, 프랙셔널(fractional) 역할, 창의적 독립, 1인 창업, AI 기반 마이크로 비즈니스 같은 자유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불안정한 근무시간, 취약한 복지, 알고리즘 관리, 낮은 협상력, 뚜렷한 진로 부재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 많은 좋은 일자리"는 매력적인 답이지만 완전한 답은 아니다.
세 가지 불편한 현실이 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 이미 전 세계 노동의 대부분은 정규직 바깥에서 일어난다. 전 세계 약 34억 노동인구 중 약 20억 명이 계약서·복지·법적 보호 없는 비공식 경제에서 일한다. 공식적 직업 너머의 세상은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인류 대부분의 일상이다.
- 유연·독립 노동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글로벌 긱 이코노미는 2024년 기준 5,57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며 2032년까지 3배로 성장할 전망이다. EU 노동자의 약 14.5%가 자영업자이고, 중국은 약 2억 명의 "유연 노동자"를 추산한다.
- 직업이 있어도 더 이상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빈곤 상태인 근로연령 성인의 거의 70%가 최소 1명 이상이 일하는 가구에 속해 있다. 미국에서도 빈곤선 이하 인구의 40% 이상이 최소 1명 이상이 일하는 가구에 산다. 고용이 곧 불안정 탈출로였던 옛 약속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고용됨/실업" 이라는 옛 이분법은 점점 쓸모없어지고 있다. 진짜 경계선은 소득·학습·자산·네트워크·주체성(agency)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포스트잡 세상은 아서 C. 클라크가 상상했던 여가 사회가 아니라, "일은 더 많지만 그중 전통적 직업 안에 담기는 일은 더 적은" 사회일 수 있다고 저자는 전망한다.
재건해야 할 다섯 가지 기능
저자는 이전 에세이("16 policies for a post-job world")에서 정책 차원의 논의를 다뤘다고 언급하며, 이번 글에서는 그 아래 깔린 다섯 가지 인간의 근본 필요(needs)를 다룬다. 어떤 진지한 포스트잡 사회계약이든 이 다섯 가지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소득 — 더 이동 가능한(portable) 안정성 일이 파편화되면 소득은 더 변동성이 커진다. 모두에게 당장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회는 소득 충격을 완화하고 전환기를 지원하며 일시적 단절이 영구적 배제로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 옛 직업은 소득에 연금·복지·병가·훈련·승진을 함께 묶어 제공했지만, 그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지금 안정성 자체가 더 이동 가능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 예시로 일본의 "Fureai Kippu(돌봄 관계 티켓)" 제도가 있다 — 노인을 돌보며 적립한 크레딧을 훗날 자신이 돌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2. 학습 — 인생 초반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 지속되는 구조 AI가 신입 사다리를 약화시킨다면, 학습은 인생 초반의 일회성 이벤트로 남을 수 없다. 더 많은 견습제, 더 많은 워크 트라이얼, 더 많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 더 많은 중년 전환, 더 많은 고용주의 초보자 투자, 학위·직함 밖에서 역량을 입증하는 더 많은 방법이 필요하다. AI 튜터, 디지털 자격증, 스킬 계좌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더 깊은 과제는 제도적 질문이다 — 고용주는 이미 완성된 인재를 원하고, 학교는 노동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며, AI는 초보자를 훈련시키던 저숙련 업무를 흡수해버리는 상황에서, 누가 사람을 성장시킬 책임을 질 것인가? 예시로 싱가포르의 SkillsFuture 제도가 있다 — 성인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승인된 훈련용 크레딧을 제공한다.
3. 지위 — 새로운 인정 방식 "무슨 일 하세요?"는 여전히 가장 흔한 사회적 질문 중 하나이며, 우리는 직함을 역량·계층·야망·정체성·사회적 가치의 지름길로 써왔다. 하지만 포스트잡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이 하나의 깔끔한 답을 갖지 못할 것이다 — 짓고, 돌보고, 배우고, 컨설팅하고, 프리랜스하고, 투자하고, 자원봉사하고, 창작하고, 실험하는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자격증, 평판 시스템, 동료 네트워크, 작업 증명(proof of work), 커뮤니티 역할, 공공 기여, 지분, 학습 기록 같은 새로운 기여 인정 방식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돈만이 아니라 **존엄(dignity)**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4. 소속감 — 일터 밖에서 공동체를 찾는 법 일터는 종종 결함 있는 공동체였다 — 정치적이고, 지치게 하고, 위계적이고, 배타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우정을 쌓고, 규범을 배우고, 멘토를 찾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주요 장소이기도 했다. 일이 더 원격화되고, 파편화되고, AI에 의해 매개될수록 소속감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직능 길드가 돌아올 수도, 지역 워크허브가 중요해질 수도,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 진지해질 수도, 동문 네트워크가 평생 지속되는 커리어 공동체가 될 수도, 협동조합·창작자 네트워크·회원 주도 기관이 더 큰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일의 미래는 곧 소속의 미래이기도 하다.
5. 소유권 — AI가 만드는 부는 어디로 가는가 저자는 이것이 가장 큰 질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AI가 막대한 부를 창출한다면 그 부는 어디로 흘러갈까? 새로운 모델이 없다면 대부분의 상승분은 테크 기업 주주에게 흘러갈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AI 기업으로부터의 "시민 배당(citizen dividends)" 방안을 제기했다. AI 챔피언 기업이 자국에 있는 미국·중국에서는 이런 재분배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지만, AI 시장 리더가 없는 나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노동자가 이미 은퇴계좌·연금을 통해 Nvidia·Alphabet·Apple 같은 기업의 주주라는 점에서 이 재분배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AI 이익 과세, 데이터센터 부담금, 자본에 대한 더 높은 세율과 노동에 대한 더 낮은 세율, 국부펀드 같은 다른 아이디어들도 있지만, 각각 문제가 있다 — 정부가 잘못된 기업을 고를 수도 있고, 세제는 느리며, 테크 기업은 국경을 넘나들며 이익을 이전하는 데 능숙하고, 공공 소유는 정치적 갈등을 낳을 수 있으며, AI 챔피언이 없는 나라는 외국 기업의 지분을 그냥 가져갈 수 없다. 그럼에도 소유권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AI가 소수의 기업과 자산 소유자를 막대하게 부유하게 만드는 동안 많은 노동자가 협상력 약화, 불안정한 소득, 좋은 일자리로 가는 경로 축소를 겪는다면, 정치는 빠르게 추해질 것이다.
결론
직업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직업이 살아남고, 일부는 더 가치 있어지며, 새로운 직업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그릇은 더 이상 소득·학습·정체성·안정·소속·사회이동성이라는 무게 전부를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삶을 지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를 다시 짓는 일이다.
진짜 질문은 AI가 모든 일자리를 가져갈 것인가, 기술 발전을 늦춰야 하는가, 모두가 결국 놀게 될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직업이 그동안 사회를 위해 해왔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다.
직업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 새로운 소유 모델, 그리고 유용한 인간 기여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일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옛 직업은 더 이상 우리가 그 위에 지어놓은 사회를 지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Andy (Post-job since 2006)
※ 원문 발행 매체 Work3는 이 글 발행 다음 주(2026-07-22) 유료 구독자 대상 "Brains Trust" 라이브 토론에서 신입 일자리 소멸/재설계 여부, AI 배당 현실성, 포스트잡 사회계약의 실제 형태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핵심 요약 (20줄)
- "AI가 일자리를 뺏을 것인가"는 너무 좁은 질문이며, 진짜 질문은 "직업에 이렇게까지 의존하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 직업은 유급노동 계약을 넘어 소득·목적·지위·훈련·정체성·복지·소속감을 분배하는 그릇이었기에, AI 논쟁이 이토록 깊이 파고든다.
- 직업은 산업혁명기 공장화 과정에서 설계된 개념일 뿐, 자연법칙이 아니다 — 12시간제·10시간제·주5일제·주말 모두 투쟁과 설계의 산물이다.
- 진짜 위험은 일자리 없는 세상이 아니라 "완전 초보자가 발붙일 곳 없는 세상"이다. 노동시장 진입 경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 미국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AI 언급에 야유를 보내는 것은 기술 저항이 아니라 깨진 사회계약에 대한 항의다.
- 영국 청년 100만 명 이상(8명 중 1명)이 교육·고용·훈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중 60%는 취업 경험이 아예 없지만 84%는 일·교육·훈련을 원한다.
- 포스트잡 세상은 미래 예측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분배 문제"다.
- 전 세계 노동인구 34억 명 중 약 20억 명이 계약·복지·법적 보호 없는 비공식 경제에서 일한다.
- 글로벌 긱 이코노미는 2024년 5,570억 달러 규모로 2032년까지 3배 성장 전망, EU 노동자 14.5%가 자영업자다.
- 영국 빈곤층 근로연령 성인의 70%, 미국 빈곤선 이하 인구의 40% 이상이 최소 1명이 일하는 가구에 산다 — 고용이 더 이상 빈곤 탈출을 보장하지 않는다.
- "고용/실업" 이분법은 낡았고, 진짜 경계는 소득·학습·자산·네트워크·주체성에 접근 가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있다.
- 재건해야 할 다섯 기능 첫째는 소득 — 연금·복지가 직업에서 분리되며 안정성이 더 이동 가능해져야 한다(예: 일본 Fureai Kippu 돌봄 크레딧).
- 둘째는 학습 — AI가 신입 훈련용 저숙련 업무를 흡수하면서, 학습은 평생 지속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예: 싱가포르 SkillsFuture).
- 셋째는 지위 — 직함 하나로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 포트폴리오·평판시스템·작업증명 같은 새로운 기여 인정 방식이 필요하다.
- 넷째는 소속감 — 일터가 무너지면 직능길드·워크허브·온라인 커뮤니티·협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 역할을 할 수 있다.
- 다섯째는 소유권 — AI가 만드는 부가 소수 주주에게만 흘러가지 않도록, 시민 배당·AI 이익 과세·국부펀드 등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각각 현실적 난점이 있다.
- 많은 노동자가 이미 연금·퇴직계좌를 통해 빅테크 주주라는 점에서 재분배 논의가 완전히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 AI가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동안 다수가 협상력·소득 안정·진입 경로를 잃는다면 정치는 빠르게 험악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 직업은 하룻밤에 사라지지 않겠지만, 소득·학습·정체성·안정·소속·계층이동이라는 무게 전부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 결론: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소유 모델·인간 기여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일은 사라지지 않지만 "옛 직업"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